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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정/이야기

<명작 공부하기> 배트맨 다크나이트 : 정의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만화가 지망생 엄두입니다. 앞으로는 제가 공부했던 좋은 시나리오들을 추려서 분석한 결과를 올려놓고 평가받으려 합니다. 위와같은 이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인 리뷰와는 다른 구조를 갖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분석한 것이 아닌, 앞으로 무언가를 만드려는 창작자 분들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만들어보았습니다. 많은 지적과 평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에 여러분과 함께 살펴볼 작품은 2008년, 관객과 평론가 양 쪽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 '다크 나이트'입니다.


 이제부터 이 작품이 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1. 첫번째 이유 : 주제에 대한 폭 넓은 변주.


 이 작품은 '정의를 지키는 영웅'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전 인생 선배님들 뒤를 쫓기에 바쁜 풋내기일 뿐이지만, 세상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세상에 자신을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구나...' 하구요.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이루어 나가며 살아가죠. 단,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대로 살아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가는대로 자신의 정의를 끼워맞추어가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닌 것 같아요. '합리화 하는 동물'일 뿐이겠죠. 자신이 나쁜놈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으니까요. 아마 죄책감에 미쳐버릴 걸요?


 이런 생각을 거듭해나갈수록 다크나이트를 움직이는 세명의 주인공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믿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이들의 강렬한 믿음(때로는 광기로까지 꼬여버릴정도의 불꽃같은!)이 이야기를 움직이는 연료가 됩니다.




 먼저 첫 번째로 하비 덴트를 봅시다. 하비 덴트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웅, 백기사의 이미지입니다. 나라의 뿌리가 되는 사법권을 등에 업고, 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죠. 세상의 밝은 쪽에서, 밝은 방법으로 밝은 정의를 이뤄나가려는 그는, 이 작품에서 말하는 정의의 첫 번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조커를 봅시다. 그는 미쳤습니다. 미친 세상에서 미쳤으니, 자신은 자신을 제정신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정의에 대한 관념을 갖고, 그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는 여태까지의 영화들에서 나온 흔한 악당들과 궤를 달리합니다. 조커의 목적인 돈이 아닙니다. 권력도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악해진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필요 자체를 못 느끼는, 그야말로 어둠 그 자체입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그는 이런 자신의 이상을 이뤄나가기 위해 정말 최선을 다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작전의 제 일선에서 움직이고, 모든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움직입니다. 이 세상의 혼돈을 끌어내어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내려는 혼돈의 사도. 이 작품에서 말하는 정의의 일그러진 두 번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배트맨을 봅시다. 그는 칭찬받고 축복받으며 살아가는 흔한 히어로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이 비난받고 멸시받을지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선이 이루어진 밝은 세상을 위해서 얼마든지 그림자의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이지요. 작품 전체에 걸쳐 끊임없이 상처받고 고뇌하지만, 결국 그는 진실만으로 지켜질 수 없는 정의의 본질을 간파하고 스스로 어둠의 기사로서 거듭납니다.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정의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라는 한 가지 소재였지만, 참 다채로운 시각이 어우러져 있음을 위의 세 인물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로버트 맥기 선생님의 책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에 나오는 '이야기와 인물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끌어가기' 라는 대목을 봅시다. 맥기 선생님은 이야기에서 인간 경험의 한계까지 폭넓게 다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인간 경험의 한계까지 갈등을 깊고 넓게 전개하는 이야기라면, 반드시 (긍정,)어긋남과 상반, 그리고 부정의 부정이 포함된 궤도를 따라야 한다.(본문 457쪽 내용)"


 다크나이트는 이러한 이론에 잘 맞아 떨어지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먼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가치에는 배트맨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어긋나버린 하비의 타락과 아예 상반된 채 살아가는 마피아들의 악행,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부정해버리는 조커의 혼돈이 있죠. 이러한 주제의 다양한 변주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관객들을 이끌어주는 작가의 깊은 성찰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좋은 요리에는 단맛도 있고, 잘 느껴보면 짠맛도, 신맛도, 고소한 맛까지 골고루 버무려져 있어서, 혀가 호강하는 것처럼 말이죠. 오락적인 부분을 떠나서 이런 잘 정돈된 깊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칭찬받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죠.



2. 두번째 이유 : 철저하게 세련된 시나리오.


 이 분석을 하기 전에 다크나이트 대본과 함께 다크나이트 영화를 다시 돌려보며 각 부분마다 시간을 매겨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대략 다음과 같은 줄거리를 가집니다.('시나리오 가이드'의 3장 나누기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처음(30분 가량) : 본격적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배트맨, 그는 점점 마피아들의 목줄을 죄여든다. 여기에 고든 경감과 강경파인 하비 검사까지 합세하자, 마피아들은 결국 생판 모르던 조커라는 의문의 인물을 끌여들여 배트맨을 견제하게 된다.


가운데(1시간 50분 가량) : 조커는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처럼 고담시 전체를 인질로 삼아 끊임없이 배트맨을 위협해나간다.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이 아닌, 선과 정의에 대한 배트맨의 믿음 자체를 뿌리채 흔들어 놓으며 그를 나락으로 밀어간다. 하지만, 하비와 고든의 도움에 힘입어 배트맨은 자신이 넘을 수 없는 선과, 넘어선 안 될 선까지 넘어내어 결국 조커를 제압한다. 그러나, 조커는 이 과정에서 배트맨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하비 검사를 타락시키는데에 성공한다.


끝(10분 가량) : 타락해버린 하비의 비참한 마지막을 지켜보게 된 배트맨과 고든. 고민 끝에 배트맨은 '영웅으로서만은 정의를 지키기 힘들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고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비가 저지른 모든 죄를 뒤집어 쓰면서, 고담시민들이 갖고 있는 정의에 대한 믿음을 지켜낸다.


 각 장, 시퀀스, 장면들을 나누어 분석한 결과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시나리오를 이런식으로 풀어보는 것은 처음 해 본 일이라 굉장히 재미있더군요.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1) 긴장을 풀 새가 없는 촘촘한 구조였습니다. 각 사건들은 큰 액션씬 빼고는 5분을 넘기지 않습니다.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오프닝 조커의 은행털이 씬도 5분남짓이고, 박진감 넘쳤던 터널 추격씬도 10분 남짓이었지만, 이 영화가 대단한 점은 이 정도 힘을 가진 장면들이 긴장 - 이완 - 긴장 - 이완을 되풀이 하며 촘촘하게 박혀있다는 것이죠. 많은 시나리오 작법서에 말하는 '결과를 상상할 수 없을 때 관객이 작품에 몰입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몸소 보여주는 시나리오 같았습니다. 왜 지루할 새가 없었는지도 깨닫게 되었고요.


 2)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능력이 돋보였습니다. (흔히 '스토리와 스토리 텔링은 다른 것이다'라고 할 때에 그 '스토리 텔링'을 말하는 것입니다.) 쓸데없이 한 곳에서 죽치고 머문다던가, 이야기 진행에 급급해서 훅닥훅닥 넘어가는 곳 없이, 시종일관 여유롭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습니다.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22분쯤에서 나오는 마피아들의 회의 씬에서 라우의 이야기와 함께 허탕을 치고 열받아 하는 고든의 모습이 겹쳐서 나오는데, 이러한 두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보는 입장에서 물리지 않고 깔끔하게 넘어갔다는 것. 그리고 44분쯤 나오는 하비의 후원회와 함께 동시 다발적인 조커의 테러장면을 같이 보여준 것은, 조커의 치밀함과 무서운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진행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이야기 자체도 좋습니다만,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좋은 화법을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3) 대사들이 간결하고 세련되었습니다. 세련이라는 말의 뜻은 우리가 흔히 알 듯이 갈고 닦는다라는 뜻입니다. 이 작품에는 이야기를 깔끔하게 나타내어주는, 정말 잘 갈고 닦인 좋은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것들을 꼽자면, 한 때 유행어가 되었던 조커의 "왜 이리 심각해?" 라던가, 조커와 배트맨의 관계를 완벽하게 함축해낸 "넌 나를 완벽하게 해!" 라던지, 작품의 마지막을 마무리 하며 배트맨의 깨달음을 보여주는 "...영웅으로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이 되는거지." 등등... 굉장히 좋은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좋은 대사가 많은 이유는, '시나리오를 만들 때 부터 모든 요소들을 세련해왔기 때문에, 대사도 자연스레 세련되어졌기 때문에'라고 생각합니다. 타당한 결과물이라는 것이죠.

 




3. 세번째 이유 : 주인공이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았다.


 적대자가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주인공이 죽어버리는 이런류의 이야기들은 마지막에 무너지더군요. 다크나이트도 처음에는 "대체 이 이야기에 배트맨은 왜 있는거냐? 조커가 더 주인공 같다!" 식의 의견들이 많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다크나이트의 주연은 배트맨이고, 이러한 사실이 시나리오 전체에 걸쳐 잘 설명되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이런 식의 이야기들이 빠지는 함정, '주연을 죽여버리는 조연'의 덫에 빠져들지 않았다는 것. 제가 다크나이트의 시나리오에 가장 칭찬하고 싶은 점입니다. 시작도 좋았지만, 마무리까지 깔끔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다크나이트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갔을까요? 저는 이 문제를 해결한 가장 큰 일등 공신은 조커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주연의 비중을 잡아먹어버린 조커가? 무슨 소리야?'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요. 조커의 말이 맞습니다. 배트맨은 조커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조커는 몰랐습니다. 자신도 배트맨을 완벽하게 거듭나도록 이끌어주는 존재였다는 것을요. 조커의 소름끼치게 순수한 악행과 혼돈은, 배트맨을 극에 극한까지 몰아붙입니다. 결국, 배트맨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까지 몰려가지요. 여기에서 모든 시나리오 작법서에 닳고 닳도록 나오는 '잘 만든 시나리오의 불변 법칙'이 다시 나오게 됩니다. 알고 계시는 분들은 알고 계시겠죠. 바로 뭐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려고 대단히 노력하는데, 그것을 성취하기는 매우 어렵다." -프랭크 대니얼- '시나리오 가이드' 중에서...


 바로 이겁니다. 주인공이 뭔가를 하려는데, 이걸 이뤄내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가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우리는 주인공의 모든 행동에 털 끝을 곤두세우게 됩니다. 조커는 방해꾼입니다. 즉, 그 과정이 어찌 되었건 이야기의 흐름을 주인공에게 쏟아부어주는 존재죠. 그 증거는 명백히 엔딩에서 드러납니다.


엄두 명작 공부하기 다크나이트 정의란 무엇인가


엄두 명작 공부하기 다크나이트 정의란 무엇인가


 조커의 파상적인 악행은 배트맨을 완벽하게 핀치로 몰아붙였습니다. 급기야 유일한 희망이었던 하비까지 타락시켜버렸죠. 여기까지가 조커의 시나리오였습니다. 더 이상도 가능하겠지만, 이 정도 수준이 조커가 할 수 있는 한계죠. 왜냐? 그는 배트맨을 이렇게 단정지어버렸습니다. "정의를 지키려는 순수한 선, 하지만 악을 껴안을 위인은 못 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너무나 괴로울 테니까." 하지만, 배트맨은 모든 조커의 악행을 무위로 돌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선을 위해서 단호한 결단을 내립니다. 바로 하비의 모든 죄를 자신이 덮어쓰기로 한 것이죠. 조커의 상상을 뛰어넘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정한 어둠의 기사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씬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비록 드러나지 않을지라도, 때론 비난을 받고 멸시받을지언정, 자신의 사명을 되새기며 우리를 묵묵히 지켜주는 존재들을 떠올리면서요. 그렇습니다. 주인공은 돌이킬 수 없는 단호한 결단과 함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변화를 보여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주인공이라 말 합니다. 그리고, 작품속에서 배트맨은 그것을 보여주었기에 주인공의 자리를 지켜내었습니다. 다크나이트의 시나리오 작가는 배트맨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조커의 강력함과 배트맨의 선택을 심어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작가의 해결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하게 다듬어진 시나리오는 세련된 구조, 세련된 대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균형을 돌려놓는 감동적인 마무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정말 길~고 긴~ 리뷰가 끝이 났습니다. 하도 오랫동안 써서 미리 적어둔 글을 보고 치는 건데도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네요. 글을 적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군요... 만만한 작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제가 공부한 내용입니다. 당연히 틀리고 미숙한 부분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여러분들께서 지적해주십사 이렇게 용기내어 인터넷에 올린 것입니다. 제 글 중 앞뒤가 안 맞거나, 내용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부분들이 있다면, 주저없이 지적해 주십시오. 수정할 부분들은 댓글 올려주신 분의 성함과 함께 수정하여 더욱 좋은 자료로서 기능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758  - 놀란의 배트맨 리부트 3부작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굉장히 좋은 분석글이라서 붙여놓았습니다. 많이들 읽어주쎄용~! (1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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